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캠핑의 역사

by 방구석캠핑 2022. 7. 21.

토마스 하이람 홀딩 / 출처-위키피디아

캠핑은 텐트나 레저용 차량 등을 이용해 집에서 떨어져 자연 속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야외 활동을 말한다. 즐거운 것과 교육적 경험을 위해 개발된 도심을 떠나 야외에서 시간을 보낸다. 세계 곳곳에서 즐기고 있는 캠핑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고자 한다. 
인류가 집을 짓기 전 살았는 삶의 모습은 캠핑과 매우 유사했다. 캠핑의 역사를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매우 유래 깊은 문화일 것이다. 집이 아닌 자연의 어딘가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것은 인류가 매우 오래전부터 삶으로 살아냈던 모습이었다. 대자연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 자연에서 구한 다양한 도구를 활용한 캠핑을 할 수밖에 없던 시대를 지나 현시대가 되어서는 캠핑은 하나의 레저로 자리 잡게 되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대자연 속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것에 대한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본능이 자리 잡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지 생각해본다. 
먼 옛날 동물의 가죽과 나무 등의 자연물을 활용해 만들던 거주지는 비, 바람, 눈, 추위 등 혹독한 날씨에서 생명을 지켜주었을 것이고, 모습을 보이지 않고 생활을 할 수 있으며 불을 사용하게 된 것은 수많은 맹수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한 필수적인 생존방식이었을 것이다. 동굴에 의존하지 않고 어디서든지 거주할 수 있는 곳을 만든다는 것은 인류의 이동과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날씨와 음식을 따라 이동하며 거주지를 옮길 수 있다는 것은 인류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농경사회가 되며 일정 지역에 거주 해야 함에 따라 한 곳에서 오랫동안 거주할 수 있는 형태의 가옥이 발달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원시적 형태의 거주지인 텐트 형태는 대부분 사라졌다. 하지만 몽골 등 유목민들은 여전히 '게르'라는 이름으로 텐트 형태의 주거 형태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듯 주거 형태는 달라졌지만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이어져 왔다. 특히 인규에게 비극이고 재앙이지만 전쟁은 많은 수의 군인이 외부에서 오랫동안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기에 여러 종류의 캠핑 장비들의 시초가 되었으며, 현재의 캠핑 장비에 큰 영감을 주었다. 몇 년에 걸쳐 진행되는 전쟁에서 텐트를 치고 야전에서 생활하는 것은 전쟁 중인 군인에게 필수적인 기술이었다. 군 생활을 경험한 누구나 A 텐트, 반합, 고체연료, 수통, 야전삽, 침낭 등의 군용장비를 토대로 훈련을 경험했을 것이고 이는 캠핑의 역사를 이루는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동서양을 가로지르던 무역상들도 캠핑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낙타 등에 야영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싣고 다니며 오랜 시간을 사막과 초원, 숲에서 야영하며 무역 활동을 하였다. 광활한 지역을 오고 다니며 다양한 날씨와 거처를 경험하며 야영에 필요한 장비들이 필요에 따라 발전하며 변화했을 것이다.

캠핑이 전쟁, 무역 등의 수단으로 활동하던 시기를 지나 레저활동으로 시작된 것은 미국의 골드러쉬와 서부 개척, 남북전쟁 등을 겪으면서이다. 단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캠핑이었지 현재의 캠핑처럼 단순히 캠핑 자체를 즐기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다.

레저로서의 캠핑은 1880년대 영국 템스강에서 대중화되었다. 토마스 하이람 홀딩은 영국의 재단사였는데, 현대 캠핑의 창시자로 간주한다.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미국을 여행하며 많은 활동을 경험하였고, 아일랜드 전역에서 사이클링과 캠핑 여행을 시작한 뒤 쓴 저서 Connemara의 Cycle and Camp 을 통해 1901년에는 미국 최초의 캠핑클럽을 결정하였다. 1910년에는 미국과 유럽 저녁에서 캠핑이 급속도로 확대되었다. 1933년에는 최초의 국제 캠핑 회의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1960년대까지 캠핑은 유럽과 북미에서 가족 휴가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레저가 아닌 교육적 목적으로도 캠핑이 진행되었다. 학생들이 캠핑을 통해 공동체 생황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 워싱턴의 거머리 학교 교장 선생님이 주도하였으며, 그 후 자연 속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기고 배우는 캠핑이 시작되었다.

과거 우리 선조들도 캠핑을 즐겼다는 흥미로운 기록이 남겨져 있다. 캠핑을 직접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캠핑 도구 유사한 역할을 하는 도구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조선시대 실학자인 서유구가 쓴 임원경제지, 그 중 이운지에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텐트와 비슷한 개념이 나와 있다. ‘경치를 가려서 택한다’라는 의미로 ‘택승정’이란 명칭으로 불렸던 물품은 이동식 정자로 나무 기둥과 장막을 사용하여 장정 한명이 가지고 다닐 수 있었던 휴대성이 있었다. 경치가 좋은 곳에 가서 머무를 수 있는 이동식 정자가 있었다는 의미이며, 오늘날 캠핑과의 유사성을 볼 수 있다.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에서 사륜 정을 소개하는데, 명칭과 같이 바퀴가 달린 정자를 뜻했다. 6명까지도 타는 꽤 큰 크기의 이동식 정자였는데, 누군가는 앞에서 끌어야 이동할 수 있는 형태였다. 오늘날의 캠핑카와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근대의 캠핑을 경험한 사람은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영친왕이다. 육군 중앙 유년 학교 본과생도 야영 연습을 위해 일본 지바현 야영장을 다녀온 기록이 남아있다. 민간에서의 첫 캠핑은 1922년 한국보이스카우트의 전신인 조선소년척후대 창설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캠핑은 1970년대 이후 군에서 사용하던 물품을 이용한 캠핑으로 시작하여 1980년도 중반 국내 경제 호황으로 인해 여가 활동이 늘어나며 전성기를 맞게 된다. 저달러, 저유가, 저금리 3저 현상과 함께 고도의 성장이 지속되면서 중산층이 빠르게 늘어났고, 이들의 여가 활동은 늘었지만 숙박 시설이 부족했음에 따라 많은 사람이 산과 계곡, 바닷가에서 텐트를 치고 캠핑을 즐겼다. 부탄가스 버너와 함께 가벼운 텐트와 에어매트 또는 돗자리 정도만 있으면 캠핑을 떠났다. 2000년대 들어서는 자동차를 활용한 오토캠핑을 중심으로 캠핑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미국 브랜드인 콜맨과 일본 브랜드인 스노우피크 등을 중심으로 캠핑 장비 또한 빠르게 발전되고 확산하였다. 오토캠핑의 변경으로 오토바이를 이용하는 모토 캠핑, 자전거를 이용하는 브롬톤 자전거 여행, 배낭여행(알파인 캠핑) 등 다양한 형태의 캠핑 문화가 도입되었다. 현재 캠핑을 즐기는 인구는 우리나라에서만 총 7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댓글